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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가희 덩리쥔
작성일
| 2017-07-22 오후 12:11:07 조회수 | 692

「첨밀밀」을 부른 아시아의 슈퍼스타!
덩리쥔의 삶과 노래



『가희 덩리쥔』은 타이완 출신으로 아시아 최고 가수 덩리쥔(鄧麗君)의 출생부터 가수 데뷔, 해외 진출 그리고 죽음을 맞는 순간까지를 다룬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인물 평전처럼 그녀의 일대기를 시간 순으로 단순 열거하지 않는다.
지은이 최창근은 타이완 유학파로서 타이완 관련 책을 세 권 출간했을 만큼 중국 사정에 정통하다. 치밀한 자료조사를 토대로 덩리쥔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그녀가 살았던 중화권 당시의 시대상을 세세히 묘사한다. 단순명료하면서도 힘 있는 특유의 문체는 읽는 맛을 더한다.

아시아의 영원한 연인 덩리쥔 출생에서 성공까지
덩리쥔은 한국에서 영화 『첨밀밀』(甛蜜蜜, 1966)의 주제곡 「첨밀밀」을 부른 가수 정도로 알려졌지만, 그녀는 ‘영원한 연인’이라 불릴 정도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가수다. 모국 타이완뿐만 아니라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와 일본에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누렸을 정도로 지금의 한류스타 못지않은 슈퍼스타였다.
1953년 1월, 타이완에서 태어난 덩리쥔은 어렸을 때부터 연예인의 끼를 드러냈다. CHBC(타이완 중화라디오)가 주최한 가요 콘테스트에서 최연소 참가자로 우승한 그녀는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열네 살에 첫 음반 『펑양화고』(鳳陽花鼓)를 낸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연예인 생활을 시작하는데, 타이완에서 처음으로 제작된 TV드라마 「징징」(晶晶)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주제곡을 부른 덩리쥔 또한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이후 그녀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이미 십대에 타이,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베트남, 홍콩 등에서 공연하며 해외로 진출한 그녀는 홍콩 10대 인기 가수로 선정되는 등 해외에서도 크게 성공했다. 이에 힘입어 스물한 살에는 첫 일본어 싱글 앨범 「오늘밤일까 내일일까」를 발매하며 비(非) 중화권인 일본에까지 진출한다.



일본에 진출한 덩리쥔은 첫해부터 대박이 터졌다. 싱글 앨범 「공항」으로 일본 레코드대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후 20여 년간 국민 가수에 가까운 인기를 누린 그녀는 일본작곡대상, 일본레코드대상 금상, 전일본유선방송대상, 일본유선대상 유선음악상 등 일본의 권위 있는 음악상은 거의 다 받았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특히 최고 전성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 중반에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속죄」「애인」「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로 3년 연속 일본유선대상, 전일본유선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한다.
일본에서의 덩리쥔의 인기는 수상 내역, 음반 판매량만으로는 표현이 안 될 정도로 가히 신드롬에 가까웠다. 그녀의 노래 「속죄」에 “석양이 비치는 방”이라는 가사가 있었다. 이 노래가 나온 뒤로 일본에서 꺼림칙하게 여기는 ‘석양이 비치는 방’을 찾는 30대 여성이 급증했을 정도였다.
마흔둘에 천식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모국인 타이완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일본을 넘나들며 활동한 덩리쥔은 ‘10억의 박수 소리’ ‘아시아의 가희(歌姬)’ ‘노래여왕’ 등 수많은 별칭에 걸맞은 아시아의 ‘영원한 연인’이었다.


자유를 노래하다
친한 동무들은 자유를 잃었고
아름다운 집을 버렸네.
친구여, 되도록 빨리 돌아와
자유의 불꽃을 피우자.
_「우리 집은 저 산 너머」에서

덩리쥔은 가수로서 크게 성공한 슈퍼스타다. 그러나 단순히 노래만 한 연예인은 아니었다. 현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고문 샤광후이(夏廣輝)는 덩리쥔에 대해 “양안(兩岸)관계가 해빙되는 데 보이지 않는 주역”이었다고 평한다.
20세기 후반 중국과 타이완은 냉전의 한가운데 있었다. 진먼섬에서 양측 간 포격전이 벌어졌고,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바뀌면서 타이완이 유엔에서 제외되었으며, 중국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천안문 사건이 발생했다.

국・공내전을 피해 타이완으로 온 외성인(外省人) 집안 출신인 그녀에게 ‘중국’과 ‘타이완’은 특별한 존재였다. 그녀는 타이완의 ‘애국연예인’으로서 포격전이 벌어졌던 진먼섬에 방문하여 군 위문공연을 했고, 타이완이 유엔에서 제외되면서 비자 문제로 일본에 구류되기도 했다. 특히 비자 문제, 일명 ‘인도네시아 여권 사건’ 때문에 그녀는 잠시 가수 활동을 접고 미국에서 대학생으로 생활하는 등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1989년 중국에서 발생한 ‘천안문 사건’이었다.



덩리쥔에게 부모님 고향인 중국은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원향’(原鄕)이었다. 그녀의 인기는 한 번도 직접 무대에 서본 적 없는 중국에서조차 폭발적이었다. 시중에 떠도는 그녀의 불법 복제 음반이 2억 개로 추정됐고, “중국의 낮은 라오 덩(老鄧, 덩샤오핑)이 지배하고 중국의 밤은 샤오 덩(小鄧, 덩리쥔)이 지배한다” “낮에는 덩샤오핑의 말을 듣고 밤에는 덩리쥔의 노래를 듣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중국 사람에게도 덩리쥔은 스타였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그녀의 인기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서구 문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중국 당국은 서구 문화를 단속하는 데 열을 올렸다. 그 비판의 대상으로 덩리쥔의 노래가 지목된다. 1983년 12월 20일, 중국공산당 상하이 시위원회 기관지 『해방일보』(解放日報)는 사설에서 “반동적 역사를 지닌 일부 노래, 예를 들어 항일전쟁 시절 적이 점령했던 지역에서 유행한 노래 등은 엄격히 금지・근절시킬 필요가 있다”며 덩리쥔이 타이완에서 불렀던 노래 「님은 언제 다시 오시려나」를 직접 언급한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문 사건이 벌어졌다. TV로 이를 지켜보던 덩리쥔은 처음에는 연예인인 자신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데 부담을 느꼈다. 그러나 사람들의 민주화 요구를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중국은 외국이 아니라 원향이었다. 덩리쥔은 홍콩에서 베이징 시위를 지지하는 콘서트 ‘중화에 바치는 민주 노래’에 참가해 노래했고, 일본 데뷔 15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 천안문 사건에 대해 슬픔을 표현했으며, 한 인터뷰에서는 “지금부터 제 삶의 목표는 중국과 싸우는 것입니다”라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은 덩리쥔에게 너무 큰 적이었다. 천안문 사건 이후 한동안 우울감에 빠진 덩리쥔은 6년 후 타이 치앙마이의 한 병원에서 지병인 천식 때문에 급작스레 사망한다.


여자의 일생
덩리쥔의 이야기는 때론 화려하고 때론 시대적이며 지극히 내밀하다. 중국을 떠나 타이완에 정착한 그녀의 부모님 이야기부터 학창 시절의 일화와 일본 진출 후 그녀를 도와준 프로듀서・작곡가・작사가들 이야기를 다룬다. 집안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파혼한 애인과 성격 차이로 헤어진 또 다른 중화권의 슈퍼스타 청룽(성룡成龍)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어준 프랑스 애인 스테판까지 한 여인의 사랑을 다루기도 한다.


지은이 최창근은 덩리쥔과 주변 인물들의 일화를 군데군데 적절하게 넣어가며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엮어낸다. 시간 순에 따른 단순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영원한 연인, 아시아의 가희, 애국연예인 등 수많은 별칭 이전에 한 명의 인간, 한 명의 여자였던 덩리쥔, 그녀의 내밀한 삶을 한 편의 문학처럼 펼쳐 보이는 것이다.

달콤해요, 당신 웃음 너무나 달콤해요.
봄바람 속 피어난 꽃 같아요.
_「첨밀밀」에서

지은이 최창근 崔彰根
한국외국어대학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타이완 국립정치대학(國立政治大學)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 일반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어린 시절부터 중화권에 관심이 많았고 타이완으로 유학을 가기도 했다. 귀국 후 한국에 ‘잊힌 이웃’ 타이완을 재조명하는 데 앞장서며, 한국인 최초로 덩리쥔의 일대기를 다룬 『가희 덩리쥔』을 썼다. 국회, 한반도선진화재단,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등에서 일했고 타이완 유학 시절 『월간중앙』 타이베이 통신원으로 활동했다. 『신동아』 『시사IN』 등에 타이완 관련 글을 쓰고 있고, 타이완 문화콘텐츠 잡지 『플럼분』(PlumBoon) 고정필진이다. 쓴 책으로는 『대만: 우리가 잠시 잊은 가까운 이웃』(2012), 『대만: 거대한 역사를 품은 작은 행복의 나라』(2013), 『타이베이: 소박하고 느긋한 행복의 도시』(2015)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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